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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안리(雁里)

안리(雁里)는 이방면의 중부에 위치한 마을이다. 뒷산에서 좌청룡이 뻗어 나가는데 그 형상이 기러기가 나르는 형상을 띈다고 하여 ‘안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안리에는 이방면사무소 외에 이방파출소와 이방초등학교가 있으며, 행정리로는 안리, 장재 2개로 나뉜다.

동산리(東山里)

동산리(東山里)는 본래 옥야면의 동산촌이었다. 안리의 남쪽에 동산서원(東山書院)이 있어 동산리로 불리었으며, 노씨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와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동산리가 있는 일대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지라 불리며, 예로부터 만석꾼이 나고 벼슬을 하는 이가 많이 난다고 전해진다. 행정리로는 동산, 부곡 2개로 나뉜다.

석리(石里)

동산리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있는 글방(文房)은 500여 년 전부터 노씨들이 살아온 마을로 서재가 있어 글을 가르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글방이라 하였는데 만석꾼 부자가 살았다 한다. 그래서 면 이름을 지을 때 성산리의 배말리 마을의 ‘배 이(梨)’와 글방의 ‘방(房)’을 따 모아 이방면이라 하였다고 한다. 행정리로는 석리 1개가 있다.

현창리(玄倉里)

이방면의 서남부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현창리는 예전 감물(甘勿)창이라 불리어 왔다. 감물창의 ‘감물’이 ‘가물 현(玄)’으로 변하여 현창이 되었다. 강가로 합천, 의령 등지로 통하는 교량이 낙동강을 가로 질러 있으므로 교통의 요지이며 낙동강에서 건져 올린 잉어로 만든 잉어회가 소문이 나서 횟집이 번성하였다. 행정리로는 현창과 이남 2개리로 나뉜다.

성산리(城山里)

성산리는 이방면의 남부로 옛날에 쌓은 고성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산이라 불리었다. 배말리 마을은 예전에 만석꾼이 살았다는 마을로 그 세도가 커서 이방면의 이름을 지을 때 배말리의 ‘배 이(梨)’가 첫글자가 되었다고 한다. 행정리로는 성산 1개가 있다.

상리(上里)

상리는 이방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 남쪽으로는 토평천이 흐르고 유어면 가항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치실 골짜기의 위쪽이 되므로 상리라 하였다. 행정리로는 상리 1개가 있다.

모곡리(牟谷里)

모곡리는 모리실, 모오실이라 불리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골짜기 앞을 지나가면서 골짜기 안에 인가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하며, 그래서 난리를 모르고 무사히 난을 피하였다고 모르고 지난 동리, 부지곡(不知谷)이란 뜻의 ‘모르실-모리실’로 변하여 불리었고 모곡(牟谷)은 모리실의 음훈차이다. 행정리로는 모곡 1개가 있다.

옥천리(玉泉里)

이방면의 동남부, 쪽지벌 늪의 북편 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물맛이 좋은 샘이 이 마을에 있어 그 물이 옥수(玉水)와 같은 샘이라 하여 옥천이라 불리었다. 행정리로는 단일리로 옥천 1개가 있다.

초곡리(草谷里)

이방면의 중동부로 안리 동쪽에 넓게 자리한 지역이다. 초곡의 동쪽은 대합면 대곡리, 내울리, 신당리, 주매리 등과 이어져 있으며, 창녕에서 이방으로 오는 지방도가 남부를 지나가고 있다. 초곡 마을이 있는 골짜기는 약 2km가 되는 좁고 긴 골짜기로 골짜기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새실이라 불리었을 것이며, 한자로 기록하면서 새(풀)가 많다 하여 ‘풀 초(草)’를 써 초곡(草谷)이라 쓰였다. 초곡 이전에는 ‘새 봉(鳳)’을 써서 ‘봉곡(鳳谷)’이라 쓰였다고도 한다. 행정리로는 초곡과 우만 2개로 나뉜다.

거남리(巨南里)

거남리는 본래 옥야면 지역이며 이방면의 북동부로 경북 구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동쪽은 대합면 목단리, 대곡리와 붙어있다. 남쪽의 산이 크다 하여 거남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나 실제 산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대이고 멀리 있는 산도 나지막한 야산뿐이어서 이보다는 마을 뒤의 산들은 작고 마을 앞의 들은 넓고 커서 남쪽이 크다 하여 거남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리로는 거남, 구학, 옥야 3개로 나뉜다.

송곡리(松谷里)

송곡리는 본래 옥야면의 손곡촌(孫谷村)이었다. 손곡촌은 밀양 손씨들이 예전부터 살아온 마을이라 손씨 마을이란 뜻으로 손곡(孫谷)이라 하였고, 소나무가 많아 예전부터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의 솔실이라 불리어 솔나무 송이 들어가는 송곡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행정리로는 송곡 1개가 있다.

장천리(長川里)

본래 옥야면 지역으로 마을 앞에 긴 내가 흐르므로 ‘진내’, ‘진늪’으로 불렀다. ‘긴, 길다’를 이곳 지방에서는 ‘진, 질다’로 발음하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장천이라 하였다. 장천초등학교, 옥야중학교, 옥야종합고등학교 등이 있고, 시장이 있다. 행정리로는 장천, 우산 2개리로 나뉜다.

등림리(登林里)

등림리는 옛 옥야면 등림촌으로 오래 전부터 불려온 지명이다. 나주 임(林)씨가 살고 매일 진전(進展)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등림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등림리는 이방면의 중서부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강변의 비옥한 토지를 경작한다. 행정리로는 등림과 죽전 2개리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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