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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강리(講里)

강리(講里)는 1008번 지방도가 통과하는 장마면의 중심부에 있다. 북쪽으로 계성천이 흐르고, 그 주위에 들이 넓다. 북쪽에 있는 산이 용암산이며, 도로 남쪽에 마이산과 장강골 등 산으로 둘러싸인 속에 마을이 있다. 골짜기에 감이 많아서 감골이라 하였는데 ‘감’이 ‘강(講)’으로 표기되어 ‘강리(講里)’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행정리로는 상강, 하강 2개로 나뉜다.

유리(幽里)

장마면의 남부인 유리(幽里)는 북쪽 마이산으로부터 남쪽 천태산까지 이르며, 마구늪이 중심부에 있는 넓은 곳이다. 영산면, 계성면, 남지읍과 경계를 하고 있는데, 벼농사와 함께 마늘, 양파, 감자 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농촌지대이다. 여기를 옛날에는 ‘마구’라 불렀는데 이는 말귀산(馬耳山)이라는 뒷산 때문이며, 중국 전설에 나오는 마고(麻姑)할미와 음이 비슷하여 ‘마고(麻姑)’라 하였다가 유현(幽玄)한 존재인 마고할미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유동(幽洞)’이 되었다한다. 행정리로는 상유, 하유, 봉화, 남유 4개로 나뉜다.

장가리(丈加里)

예전에는 영산군 장가면이었으며, 장가의 ‘장(丈)’은 길다는 뜻이며 ‘가(加)’는 변두리 또는 산을 뜻하니 ‘긴 변두리’ 또는 ‘긴 산’을 의미한다. 장가리의 서쪽으로 등산이 솟아 있으며 남지에서 창녕으로 가는 장가리 앞의 길은 예전에 서울로 통하는 한길(大路)로 행인이 많았었다. 행정리로는 동장가 1구, 동장가 2구, 서장가, 월명 4개로 나뉜다.

초곡리(草谷里)

초곡리는 장마면의 북부로 계성면과 창녕읍의 사이에 폭 0.5km, 길이 5km로 비집고 들어간 마을이다. 대체로 산골이며 산을 사이에 두고 새실과 왕거 두 골짜기가 길게 뻗어 있었으나 힐마루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왕거 골짜기는 없어지게 되었다. 초곡을 속새밭골, 새실이라 불렀는데 새는 억새를 말하니 ‘풀 초(草)’로 훈차되었고 실은 ‘곡(谷’)으로 표기된 것이다. 행정리로는 초곡 1개가 있다.

산지리(山旨里)

산지리는 1914년 장가면과 마고면이 통합되어 장마면이 될 때 화영(華榮)과 마고면의 도동(道洞) 등이 합하여 졌다. 산지는 예전 ‘상지(上旨)’라 하였으니 ‘山’과 ‘上’이 음이 비슷하고 그 뜻도 높은 곳이 곧 산이므로 서로 통한다. 즉 산지는 ‘웃쪽마을’, ‘산마을’의 뜻으로 불리어진 것이다. 행정리로는 산지, 화영, 도동 3개로 나뉜다.

신구리(新龜里)

새애불이라 불리던 신촌(新村)과 미이실이라 불리던 미구(尾龜)가 합하여져서 신구리가 되었다. 새애불은 골짜기 사이의 들이라는 의미이나 ‘사이 간(間)’의 뜻이 별로 좋이 않아 ‘새 신(新)’이 대신 쓰여 ‘신촌(新村)’이라 쓰였고 미이실은 뒷산의 형태가 거북이라 거북의 꼬리라는 뜻으로 ‘미구(尾龜)’라 쓰인 것이다. 신구리는 유어면 광산리, 남지읍 시남리와 서북쪽으로 맞닿아 있는 산지이다. 행정리로는 신구, 미구 2개로 나뉜다.

동정리(東亭里))

장마면의 서쪽으로 이곳에 4, 5백년은 된 오래된 정자나무가 있으며, 동정은 마을 동편에 정자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東’은 옛 말로 ‘새’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사이(間)’를 뜻하여 동쪽에 있는 ‘새벌(사이 동네)’이라는 뜻으로도 보인다. 행정리로는 동정, 상이곡, 하이곡 3개로 나뉜다.

대봉리(大鳳里)

1914년 대야리(大也里)와 어봉리(魚鳳里)가 합하여 대봉리가 되었다. 대봉리는 서쪽으로 산을 등지고 동쪽으로는 계성천과 저습지와 들판을 앞둔 마을이다. 계성천을 건너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불편이 있으나 모두 대농가로 부자마을이 되었다. 대봉리는 6.25 한국전쟁 때 창녕군 내 최초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행정리로는 대봉, 대야 2개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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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면 총무담당(☎ 055-530-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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