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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고분이전복원관

계성고분이전 복원관

국도 5호선 확장구간에 포함되어 1988년 호암미술관에 의해 발굴조사된 계성고분군의 Ⅱ지구 1호분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 잡은 대형봉토 석실무덤이다.
이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제큰고리귀걸이(金製太環耳飾) 등 중요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고, 또한 봉토가 방사선상의 12방향으로 구획되어 조성된 특징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 고고학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창녕읍 송현리 49-3번지 1,679㎡ 부지에 복원관을 건립하여 Ⅱ지구 1호분을 이전·복원하고 영구 보존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멸실위기에 있던 중요한 문화유적이 공간적 위치만을 달리하여 보호를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더불어 지역의 고대사를 밝혀줄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 계성고분이전 복원관
  • 계성고분이전 복원관

창녕 초곡리유적 고려시대 방형구획무덤[方形區劃墓]

초곡리방형2호분

  • 유적명 : 창녕 골프장 조성부지 내 초곡리유적
  • 유적면적 : 7,100㎡
  • 조사기간 : 2008. 4. 13 ~ 7. 20
  • 조사기관 : (재)우리문화재연구원

창녕 골프장 조성부지의 창녕 초곡리유적에서는 방형구획무덤 2기, 돌덧널무덤 3기, 나무널무덤 44기, 화장무덤 5기 등 고려시대의 다양한 무덤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 이곳에 복원 전시되어 있는 방형구획무덤 2호는 유적 내에서도 입지가 우수한 구릉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특별한 형태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①입지선정→②구덩이 굴착→③돌덧널조성→④나무관 안치→⑤뚜껑돌(4매) 덮음 및 밀폐→⑥무덤영역의 구획→⑦봉분성토 순서로 축조되었다.

방형구획무덤 2호는 전체 방형구획 규모가 길이 550m, 너비 700cm, 내부 돌덧널은 길이 235cm, 너비 85cm, 시신이 안치된 목관은 길이 170cm, 너비 40cm에 달한다. 무덤 내에서는 청동접시, 청동합, 청자접시와 대접, 중국 북송대 동전(太平通寶·宋元通寶·皇悚通寶) 등 수십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초곡리방형2호분
  • 방형2호분
  • 방형2호세부

『고려사』권85 형법2 금령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무덤의 종류와 영역의 구획을 엄격하고 상세하게 규정하였는데, 이로 보아 창녕 초곡리유적의 방형구획무덤은 당시 창녕지역에서 높은 신분과 재력을 갖춘 유력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방형구획무덤은 당시 일반적인 무덤들과는 달리 국내에서도 발굴사례가 드문 무덤으로, 이를 통해 창녕의 고려시대 지배층의 장례문화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창녕 사창리유적 청동기시대 무덤

사창리_1호

  • 유적명 : 창녕 부곡 전지훈련장 건립부지 내 사창리유적
  • 유적면적 : 47,251㎡
  • 조사기간 : 2006. 10. 31 ~ 2007. 6. 1
  • 조사기관 : (재)우리문화재연구원

이곳에 복원·전시되어 있는 무덤 5기는 창녕 부곡 전지훈련장 건립부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중기의 무덤 24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골라 원형 그대로 이전․복원한 것이다. 왼쪽 끝의 1호, 중앙 오른쪽의 16호, 오른쪽 끝의 23호는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올린 석축형석관(石築形石棺)으로서 평면형태가 ‘두광족협’(頭廣足狹:사람의 머리․어깨 쪽은 넓게, 발쪽은 좁게 함)을 나타내며, 모두 여러 개의 뚜껑돌이 남아 있었다. 이에 비해 7호와 그 오른쪽의 10호는 편평한 판석을 조립해 만든 상형석관(箱形石棺)이고 특히 7호도 평면형태가 ‘두광족협’을 나타내며, 10호는 하나의 뚜껑돌로만 덮은 것이 특징이다.

  • 사칭리 7호

    사칭리 7호

  • 사칭리 16호

    사칭리 16호

  • 사칭리 23호

    사칭리 23호

창녕 사창리유적은 유적지 남쪽 배후의 골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이 운반해온 토사로 이루어진 선상지면의 중앙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전기의 수혈건물지 1동과 중기의 무덤 24기, 고려~조선시대의 석렬유구, 수혈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청동기시대의 무덤들은 창녕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것으로, 상부의 고인돌[上石]과 고임돌[支石]은 사라지고 하부구조만 남아 있는 것이다.
무덤들은 돌로 관을 짜고 사람을 묻은 석관묘가 대부분이나, 나무로 뚜껑을 짜서 덮은 무덤(11호)도 확인되었다. 무덤 내에서는 간돌칼(磨製石劍),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대롱옥(管玉), 사람의 치아와 뼈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간돌칼을 일부러 두 조각으로 부러뜨려 넣거나 벽석 사이에 끼워 넣어서 묻는 의례행위 등의 자료로 확인되어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창녕 영산 서리유적 서구(西丘) 15호 석실무덤

영산서리15호

  • 유적명 : 창녕 영산 서리농공단지 조성부지 내 유적
  • 유적면적 : 215,118㎡
  • 조사기간 : 2010. 2. 16 ~ 11. 15
  • 조사기관 : (재)삼강문화재연구원

영산 서리유적은 영산 서리농공단지 조성사업 부지 내에 위치한다.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무덤과 삼국시대 ~ 통일신라시대 주거지, 무덤, 수혈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곳에 옮겨져 복원된 석실무덤은 지금까지 창녕지역에서는 조사예가 드문 것으로, 발굴종료 후 이곳으로 이전·복원하여 향후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15호 석실무덤은 구릉의 능선에 위치하며, 근래 경작지 조성으로 일부 삭평되어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으나, 영산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석실무덤이다. 조사범위에 포함되는 구릉이 좁아 석실은 1기만 조사되었다. 하지만 구릉의 경사 아래쪽에는 석실과 비슷한 시기의 수혈유구, 주거지 등이 확인되어 이 시기 유적의 분포범위는 보다 넓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의 평면형태는 방형(方形)이며, 규모는 길이 550cm, 너비 480cm, 최대깊이 80~90cm이다. 적갈색 풍화암반을 굴착하여 조영되었다.
석실은 길이 40~60cm의 장방형 석재로 쌓았는데, 조사 당시 석실의 벽석은 1단~4단 정도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입구는 경사 아래쪽인 동벽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파괴되어 최하단석만 남아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석벽의 하단석은 긴 모로 눕혀서 쌓고, 상단석은 긴 모 또는 짧은모쌓기 하였다. 벽석과 벽석 사이의 틈새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잡석이나 할석을 채워 틈을 매웠는데, 벽석의 가공이 거칠고, 석재와 석재 사이에 틈이 크다. 북벽을 제외하고는 벽석의 줄들이 고르지 못해, 전체적으로 축조상태가 정연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서벽에 접해서 장방향의 시상(屍床)이 위치하는데, 사람 머리 크기의 할석을 바닥에 깔아놓았다. 시상의 북쪽은 일부 결실되었는데, 규모는 길이 250cm, 너비 100cm 정도이다. 무덤의 넓이에 비해 시상의 크기가 다소 좁다. 바닥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내부토에서 연질소호(軟質小壺) 1점이 출토되었다.

야외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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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체육과 박물관담당(☎ 055-530-1504)
만족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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