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및 송현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대형고분군으로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關野 貞)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917년의 분포조사를 시작으로 1918년, 1919년에 걸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으나 제21호, 31호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으며, 조사자에 따라 고분번호를 달리하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조사된 고분이 어느 고분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이 시기 조사를 통해 마차 20대와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품들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부 유물을 제외하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를 통해 보면 금동관, 금·은장신구, 은 관장식, 금동관모,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장식무기류, 비늘갑옷을 비롯한 각종 철제무기류, U자형 삽날을 비롯한 각종 농공구류와 금속용기류, 각종 토기류와 목기류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의 양상과 고분구조를 볼 때 5~6세기 전반이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Ⅲ군 10호분 (송현동 15호분) 출토 순장인골 복원

송현이
이 연구는 과거 인간의 신체적 특징에 역사 정체성을 부여하고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해석을 바탕으로 고대사회의 문화를 폭넓게 복원하고자 기획되었다.
한국에서 출토된 인골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고고학·법의학·해부학·유적학·화학·물리학 등 국내의 인문학 및 자연과학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 최초의 학제간 융합연구이며, 과거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그 모습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재구성하고 이미징한 사례연구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주관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가톨릭의과 대학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충청문화재연구원·한국고고과학연구소가 참여하여 2008년 7월 ~ 2009년 10월 총 15개월간 1,500년전 창녕에 묻힌 순장인골의 복원연구를 진행하였다.

계성고분군

경상남도 기념물 제3호 계성고분군는 1917년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 류(今西 龍)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고, 1967년 문화재관리국 주관으로 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로 비교적 활발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계성고분군은 계성면 계남리, 명리, 사리 일대에 고분군이 분포하며 행정지명을 따서 계성고분군으로 통칭하고 있다.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 횡구식 석실묘(橫口式 石室墓), 옹관묘(甕棺墓) 등의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었고, 은허리띠, 금 관장식, 금동관, 금귀걸이, 목걸이 및 방울잔, 원통모양 그릇받침, 쇠도끼, 쇠칼, 미늘쇠, 말드리개, 말띠꾸미개, 삼지창 등 각종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1·4호분이 무덤의 구조와 형태, 유물의 형식에 있어 창녕지역 내에서 가장 이른 것으로 보이며 그 외의 무덤들은 6~7세기대의 것으로 창녕의 중심지가 교동으로 이동한 이후 축조된 다소 늦은 시기의 무덤들로 파악되고 있다.

계성고군분
실내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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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과 박물관담당(☎ 055-530-1504)
만족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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