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선시대

백자

초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자류는 발과 접시, 종지로 한정되어 출토되었고, 유색은 회청색과 유백색 계열이 중심을 이루며 태토는 맑은 백색이나 유백색, 회황색 계열의 유물이 관찰된다.
굽의 형태는 오목굽, 죽절굽, 수직굽과 도린굽 일부가 확인되며 받침은 대부분 내화토받침이 사용되었으며 눈수는 3~5개가 가장 많이 확인되며 일부 가는 모래를 받친 유물도 있다.
초곡리 유적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출토되는 예가 없어 분청사기와 백자 부장의 시간상의 연속성은 알 수 없으나, 당시 백자 유물의 생산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분청사기만을 매납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형의 특징과 굽의 형태, 굽받침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16세기에서 17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유물로 판단된다.

청동합

청동합 또는 청동완은 재료의 희소성 및 제작기법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 및 계층을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청동완은 13세기 대를 전후하여 전성기를 이루다가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의 공백기를 거친 후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대에 이르기까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청동완으로 바뀌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공백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고려 후기 국가 재정상 '동'이 무기의 재료이자 상시적인 원으로의 공출로 인한 자원 부족품이었기 때문에 국내 민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사용 규제 때문으로 보여진다. 15세기 중반부터는 다시 국가에서 채굴에 힘을 쓰고, 전문 유기주조 기술자의 출현으로 인해 청동용기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기형의 주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조선 초에 다시 청동용기가 출현하게 되는데 고려 말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보인다. 새로운 형태의 완의 출현과 보주형 꼭지가 부착된 개의 출현, 동체부와 대각이 동시 제작된 청동완 등이 출토되기 시작한다.

가위

가위는 한자어로 교도(交刀)․전도(剪刀)․협도(鋏刀) 등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나온 원시형의 가위이다. 고려시대의 가위는 대부분 철제와 동제이다. 형태는 신라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나온 것과 같은 형, 또는 현재의 가위와 같은 ×형의 것으로, 손잡이의 형태가 다양하다.

조선시대 가위는 고려의 것과 비슷한 ×형의 것이 대부분이며, 손잡이 모양이 고려 것보다 좌우로 넓어진 것이 특징이고 모양도 다양하다. 사용된 재료는 무쇠가 대부분이고 철과 백동을 사용한 것도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손잡이의 좌우가 다른 것이 나왔는데, 이것은 왼쪽 손잡이에는 엄지손가락을 넣고 오른쪽 손잡이에는 나머지 네 손가락을 넣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가위가 나오고 있는데, 그 사용하는 원리에는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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