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유품

보부상유품

중요민속문화재 제30-6호

1884년 이후 창녕을 중심으로 설치된 상무사(商務社)에서 사용하던 전적과 인장이다. 상무사는 우사(右司)는 보상(褓商), 좌사(左司)는 부상(負商)으로 구성되었는데 창녕의 보부상은 상무좌사 소속이다.
창녕 지역은 동남쪽으로 부산, 서쪽으로 합천, 서남쪽으로 진주, 남쪽으로 마산, 북쪽으로는 대구와 연결되는 요충지인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김해·부산에서 쌀, 소금, 생선 등이 멸포나루(길곡)·이이목·반포나루(남지) 등을 통해 반입되었고, 경북 지방인 고령·상주·안동 등지에서는 목재·도기(陶器)·죽기(竹器)·인삼 등이 솔터나루(이방)로 반입되었다. 또, 산청·합천·거창 등지에서는 삼베·모시·고기 등의 특산품이 수상 및 육로로 운송되어 예부터 교역이 아주 성행하였다.

1888년 조직을 정비한 창녕상무사 임방(任房)은 원래 창녕읍내의 시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 칸 기와집으로 지어진 이곳은 소유자가 하○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하씨가에 의해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녕 임방이 설립될 당시 하씨가의 사람들은 각 지역 임방의 어과전(어곽전 : 魚藿廛)에서 공원 또는 집사의 직을 맡다가 1891년 이후부터는 시장 탄압이 이어지면서 창녕상무사는 명칭을 창녕상무소로 바꾸고 창녕시장을 상무사 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창녕상무사 임방은 2001년부터 읍내 일대가 개발되면서 창녕읍 말흘리 속칭 ‘오박골’로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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