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척경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비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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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拓境碑)라 일컫는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말이 없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이 소풍 갔던 학생에게 발견되어 알려졌는데,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4년 2월 7일 창녕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橋本良臧)에 의해서 였다. 그 후 1924년 지금의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순수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는데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고 그 곳에서 천신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순수한 기념으로 비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진나라 시황제(BC.259∼BC.210)부터라고 한다.

이 비는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개석(蓋石)이나 대석(臺石)을 사용하지 않은 삼국시대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한 면을 간 다음 바깥 면 비석의 형상에 따라 음각의 줄을 돌렸는데 오른쪽 상부는 암석이 사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일행(一行)씩 낮추어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자수(字數)는 일정하지 않아 끝 행은 3자 뿐인 것도 있으나 26자의 행이 가장 많고 후반부는 위에서 2행마다 1자식 낮추어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순수의 연시(신사년 2월), 사적, 수가인물(수행원)의 3부분으로 되어있고 인물의 기록순서는 속부, 인명, 직관, 직위를 표기하여 삼국시대 신라비문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간격은 4㎝이다. 앞부분이 마멸되어 자획(字劃)이 불분명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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