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룡사 사적기에는 숙종 30년(1704) 가을의 대홍수로 금당 부도가 유실되고 승려 20여명이 익사하는 참변을 당한 후 숙종 38년(1712)에 이 대웅전과 기타 당옥은 재건한 것으로 되어 있어 상량문과는 일치되지 않는 점이 있으나, 건물에 관한 한 상량문을 더 중시해야 옳을 것 같다.
팔작(八作)지붕의 다포(多包)집계 건물로 비교적 조선시대 중기 이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 내부는 뒤쪽에 치우쳐 고주(高柱) 2개를 세워 그 위로 대들보가 건너가게 했다.
고주(高柱)를 의지하여 불단(佛壇)을 설치했고 그 상부에 닷집을 달았으며, 천정은 우물 천정이지만 중앙 부분을 주위보다 한층 높게 한 것이 특이한 점이다.
출목(出目)은 내외 모두 2출목으로 동일하고 그 상단에 살미첨차의 끝은 3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