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pponia nippon. 이것은 따오기의 학명이다.
학명은 속명과 종명으로 이루어지는데, Nipponia속으로 분류되는 종은 단 1종, 따오기뿐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따오기는 수렵 등으로 인하여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고 1981년 니이가타현 사도섬에서 포획된 5마리를 마지막으로 일본의 산과 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자료출처 : Tsuneo Sekijima, Niigata University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번식을 하는 텃새인 따오기는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뒤덮을 만큼 흔한 새였다고 하는데, 19세기 말부터 깃털을 사용하기 위한 남획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격감했다.
1892년 "수렵에 관한 규칙"으로 33종의 보호새가 정해지지만, 따오기는 제외되었다(1908년 포함됨).
1920년대에는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어 1927년에는 사도 지청이 현상금을 걸고 따오기를 찾아 나서 1931년 니이가타현 사도섬에서 27마리가 발견되면서 193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39년 이시카와현 노토에서 17∼18마리의 따오기가 확인된다.(1930년대에는 이시카와현 노토에 5∼20마리, 니이가타현 사도섬에 60∼100마리가 서식하고 있었다는 자료도 있음)
1952년 조사 결과 니이가타현 사도섬에 총 24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60년에는 국제보호조류로 지정되었고, 사도에서는 마을에서 먹이를 공급하거나(1959년) 나라에서 따오기의 서식지를 국유림으로 사들이는(1965년)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따오기는 둥지를 큰 나무 위에 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식지의 산림을 소홀히 관리했다. 뿐만 아니라 번식지에서도 제한 없이 농약과 제초제를 마구 살포했다.
결과적으로 따오기의 먹이는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따오기의 몸도 농약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1967년 1월 사도섬 니보무라에 따오기 보호 센터를 건설하면서 포획된 따오기들을 이 곳으로 옮겨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1968년 7월에는 우에노 동물원, 이노카즈라 자연 문화원, 다마동물공원에서 따오기 보호 소위원회를 설치해 따오기의 인공 사육에 협력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10마리에 못 미치게 되었고(1967년 사도에 11 마리, 이시카와현에 한 마리 남은 것이 확인되었다는 자료도 있음), 더 이상 야생상태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세계야생동물기금(재단)의 지원을 받아 1979년 11월, 드디어 모든 따오기를 생포하여 인공번식을 시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라 1980년 12월부터 1981년까지 들에 생존하는 마지막 따오기 5마리를 모두 생포하여 인공번식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증식엔 실패만 거듭하여 1986년에는 2마리만 살아남았고 결국 1마리(‘킨’)만 살아남았는데, 중국의 수컷 한 마리를 신설된 사도 따오기보호센터로 데려와 인공번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99년 1월에 중국 장쩌민 주석이 일본을 방문하며 한 쌍의 따오기 ‘요우요우(수컷)’와 ‘양양(암컷)’를 기증했다. 이들 사이에서 같은 해 5월 21일 인공부화로 ‘뉴우뉴우(수컷)’가 탄생하였다. 따오기 번식에 성공한 일본 오부치 게이죠 수상이 장쩌민 중국 주석에게 번식한 따오기 사진을 선물할 정도로 일본 열도가 온통 따오기로 떠들썩했다. 그 후에도 ‘뉴우뉴우’의 짝으로 중국에서 ‘메이메이(암컷)’가 기증되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120여 마리의 따오기가 사육되고 있으며, 그 중 10마리는 2008년 9월 야생방사 하였다.
지금까지 JICA, 환경청, 민간 기금·모금 등에 의해 사육 번식 시설의 정비, 감시 카메라, 차량 등의 기자재를 제공하고, 조사나 사육 전문가를 파견하며, 서식 상황 조사를 지원하며, 보급 개발 사업을 지원하는 등의 협력을 실시해왔다. 일본과 중국은 ‘중일 공동 따오기 보호 계획’을 책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