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만옥정공원 (벚꽃)
국보 제33호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개석(蓋石)이나 대석(臺石)을 사용하지 않은 삼국시대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한 면을 간 다음 바깥 면 비석의 형상에 따라 음각의 줄을 돌렸는데 오른쪽 상부는 암석이 사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일행(一行)씩 낮추어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자수(字數)는 일정하지 않아 끝 행은 3자뿐인 것도 있으나 26자의 행이 가장 많고 후반부는 위에서 2행마다 1자식 낮추어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순수의 연시(신사년 2월), 사적, 수가인물(수행원)의 3부분으로 되어있고 인물의 기록순서는 속부, 인명, 직관, 직위를 표기하여 삼국시대 신라비문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간격은 4㎝이다. 앞부분이 마멸되어 자획(字劃)이 불분명한 점이 있다.
도문화재자료 제218호로 창녕읍 교하리에 있는 것을 광복 후 만옥정에 옮겨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23㎝, 폭 46㎝, 두께 20㎝ 화강암제로서「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이라고 새겨져 있다. 척화비는 구한말 대원군이 서양열강들이 조선 내에 세력을 뻗치고자 하므로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백성들이 이를 경계하고자 하였다.
도유형문화재 제10호이며 이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신라 일반형의 석탑으로,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지고 상층기단(上層基壇)과 갑석(甲石) 일부가 부서져 없어졌다. 상층기단(上層基壇) 면석(面石)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새겨져 있고, 탑신 각면(各面)에는 양 우주(隅柱)만 새겨졌을 뿐 다른 조각은 없다. 옥개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도유형문화재 제231호이며 축조연대를 알수 없고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주사(主舍)와 양익사(兩翼舍)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주사(主舍)로만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