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리(釜谷里)
부곡-가매실(釜谷)은 본래 유장면 지역이었다. 가매실이라는 지명은 마을 앞에 있는 산봉우리가 가마(釜)처럼 생겼기 때문이며 한자로 옮기면서 ‘가마 부(釜를)’를 써 부곡이라 하였다. 부곡리에는 구곡원(仇谷院)이 있었다. 원(院)은 조선 초기의 주요 관로에 두었던 숙식 시설이다. 이 구곡원에 마수가 있었으므로 ‘원(院)’이 마수에 붙어 마수원으로 많이 불려지게 되었다. 행정리로는 내부곡, 마수원, 마등 3개로 나뉜다.
미구리(尾九里)
마수원 서쪽으로 누구택(樓仇澤)이라는 큰 늪이 있는 마을이다. 이 늪을 누구늪, 누우늪 등으로 부르는데 마을 이름으로도 불리었었다. 누구늪이 ‘누구동(樓句洞)’으로 쓰여 졌다고 하며, 『호구총수』에는 ‘미구촌(彌仇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미구(彌仇)’가 거북이 꼬리라는 뜻의‘미구(尾龜)’로 변하여 일제강점기 때 ‘尾九’로 된 것이다. 이곳의 팔락정(八樂亭)은 정한강의 선정(善政)으로 이루어진 군내 8개 정자 중 하나로 유명하다. 행정리로는 미구 1개가 있다.
가항리(加項里)
유어면의 서부에 있는 마을로 『호구총수』에는 ‘가항촌(加項村)’과 ‘등대촌(登垈村)’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2개리가 합하여져서 가항리가 된 것이다. 가항리는 유어면의 서쪽 끝으로 이방면과 경계를 하고 있다. 고암과 대지에서 흘러 내려온 토평천이 낙동강에 흘러들어 끝나는 곳이다. 토평천이 우포(牛浦)와 이방면 골짜기의 목포(木浦) 등 큰 늪의 물과 합하여져 가항리 북쪽을 흘러 서쪽 끝에서 낙동강에 흘러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근처에는 저습지와 작은 늪이 많은 저지대로 쪽지벌, 호포(狐浦), 앞벌, 수실벌, 가항늪 등등이 있었는데 최근 개답되어 옥토로 많이 변하였다. 행정리로는 가항과 승계 2개로 나뉜다.
세진리(世津里)
세진리(世津里)는 유어면의 북부로 우포늪의 남쪽에 있다. 우포(牛浦)늪은 이방면, 대지면, 유어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는데 목포, 사지포, 쪽지벌과 함께 4개 늪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내륙습지이다. 이 일대에는 옛부터 겨울이면 갈가마귀, 청둥오리, 백조 등 겨울 철새들이 날아드는 곳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예전에는 ‘면을(面乙)’이라 했는데, ‘세진(世津)’은 선조 때 창녕현감으로 있었던 한강 정구가 작명한 것으로 그 뜻은 ‘인간 세상의 나루’라는 말로 이곳에 왔다가 목포의 나루를 보고 ‘인간의 나루가 좋다.’하여 지은 것이다. 행정리로는 세진과 생학 2개로 나뉜다.
대대리(大垈里)
옛 유장면이었던 대대리(大垈里)는 대대촌과 사지촌(沙旨村)으로 있다가 유장면이 어촌면과 합하여질 때 대대리가 되었다. 대대리는 유어면의 북쪽으로 세진리와 함께 북부를 이루어 이방면과 대합면 주매리, 대지면의 본초리와 경계를 이룬다. 창녕에서 합천 방향으로 국도 20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회룡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 회룡초등학교가 있었으나 1997. 3. 7. 폐교되고 현재는 우포탐방객을 위한 생태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대대리는 회룡마을의 국도변에서 북으로 들어가 있는 마을로 ‘한터(큰 터)’라는 뜻이다. 행정리로는 대대와 회룡 2개 로 나뉜다.
선소리(船所里)
선소리(船所里)는 유장면(遊長面)때도 선소리로 불렀다. 동쪽에 대지면과 경계를 하고 있고 북과 서는 대대리, 부곡리와 맞닿아 있으며, 남쪽은 창녕읍 용석리와 거마 등과 더불어 있다. 유장면의 옛 소재지인 유장은 본래 버들이 많아 유동(柳洞)이라 불리었다. 이때 유장면의 면사무소는 별도로 건물이 없었고 유장면장 사택에서 집무하였는데 현재는 유장면의 이름만 유장 마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은 마을 앞 쪽으로 제방을 쌓았지만 옛날에는 낙동강 물이 선소 마을 앞까지 넘쳐흘렀다 한다. 그래서 배가 마을에 닿거나 다녔고 조선 때는 병선을 만든 곳이었으며, 동리가 있는 곳도 배의 모양을 한 지형이라 선소(船所)라 하였다 한다. 행정리로는 유장과 선소 2개로 나뉜다.
진창리(陣倉里)
진창리(陣倉里)는 유어면의 중부로 부곡리, 선소리의 남쪽에 있다. 옛 어촌면의 땅으로 진창(陣倉)촌과 거마(巨馬)촌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14년 4월 군면분합폐치에 따라 합하여 유어면의 진창리가 되었다. 진창은 이곳에 양곡을 쌓아 저장해 두던 오래된 창고가 있었다 하여 ‘묵은창’이라 하여 ‘진창(陣倉)’이라 불리운 것이라 한다. 거마는 목마른 말이(渴馬) 낙동강 물을 먹고 있는 형국으로 갈마음수지형(渴馬飮水之形)이라 하여 ‘갈마(渴馬)’라 불리었는데 그 음이 좋지 않아 ‘거마(巨馬)’로 바꾸었다 한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진창은 군진(軍陣)의 창고를 말한다 하므로 군사용 양곡을 저장하던 진창(陣倉)이었음을 알 수 있다. 행정리로는 거마와 진창 2개로 나뉜다.
광산리(光山里)
광산리(光山里)는 유어면의 남부로 남지읍 시남, 장마면 신구, 창녕읍 외부리와 경계하고 있다. 옛 어촌면의 구역으로 본어촌(本漁村)과 대동촌(大洞村)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유장면과 어촌면이 합하여져 유어면이 될 때 광산리가 되었다. 본어촌을 ‘어울’이라 불리었다 하는데, 어울은 ‘어울리다(交)’라는 뜻으로 보인다. 광산은 광정이, 광정 등으로 불린 동네로 ‘빛나는 산’의 뜻인 광산(光山)으로 표기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격퇴하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종군한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자 후손들이 세운 광산서당이 있으며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행정리로는 광산과 대동이 있다.
풍조리(風槽里)
풍조리(風槽里)는 유어면의 중부 동남에 있는 법정리이다. 풍조의 앞산이 성지산의 줄기인 천마봉(天馬峰)으로 천마봉의 산세는 용마가 나르는 형국이라 하여 이것과 관련하여 인근 지명들이 불리어졌다 한다. 천마봉 동쪽 창녕읍 외부리(外釜里)는 용마가 먹을 죽을 끓이는 가마솥이고, 이곳은 용마의 먹이가 든 구시(구유)라 한다.‘바람구시, 파랑구실’등으로 불리어져 바람은 ‘바람 풍(風)’, 구시는 ‘구유 조(槽)’로 옮겨졌다. 어촌면 때 두지촌(豆只村)과 신문촌(新門村)으로 있었는데 1914년 4월 군면폐치분합 때 풍조리가 되었다. 행정리로는 풍조, 신문, 작달 3개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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